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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희망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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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약을 하지 않는 것이 처음이라 두렵지만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다짐한다.

현재 나는 마약중독자다. 2016년 6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심리적으로 외로울 땐 데이트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곤 했는데 그때 무렵이었다. 앱을 통해 만난 그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혹시 너 좋은 거 해본 적 있어?” 나는 “그게 뭔데? 해 본적 없어”라고 대답했고 그는 가방에서 투명색 봉지에 담긴 하얀 가루를 꺼내들었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떻게 하는 건데?”라고 묻자 그는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순간 나는 당황하였으나 그는 “한번 해보고 맞지 않으면 다음에 안 하면 되지”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지 뭐”라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선뜻 내 오른팔을 그에게 맡겼다. 무언가 엄청 뜨거운 기운이 내 오른쪽 팔부터 머리까지 순식간에 차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황홀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넘쳤고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뒤 그와 다시 만났을 때 흰색 가루가 필로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좋은 기억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다시 필로폰을 했고 그렇게 몇 번 만남을 가졌다.

난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데 어느 날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바로 보건소로 가서 익명으로 HIV 간이검사를 받았는데 음성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그때의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한동안 마약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내 심장은 마치 터질 것 같이 뛰기 시작했고 머릿속으로는 온통 필로폰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는 필로폰을 해버렸다. 다음날 난 마약에 취해있는 상태로 출근했다. 사람들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걱정하였고 그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는 회사에서 직책을 맡게 됐다. 그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하기 싫어지는 번 아웃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퇴사를 하여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 놓고 마약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마약을 샀다. 나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 내가 직접 마약을 살 수 있게 되었고 마약을 하는 것은 마치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월세를 내지 못해 친구가 집에서 나갔고 나는 작은 셰어하우스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남은 보증금으로 마약을 샀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무서워서 인터넷에 마약 치료에 관련된 내용을 검색했는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라는 연관검색어를 발견하여 상담 예약을 잡았다. 2017년 12월 나는 서울 당산동 센터에서 처음 상담을 받았다. 강남 을지병원 정신과 진료를 권유했고 두 달간 열심히 외래 다니며 단약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나는 극심한 불안상태가 오더니 ‘갈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갈망을 느끼자마자 나는 다시 텔레그램으로 필로폰을 샀고 또 마약에 굴레에 빠졌다. 다음날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상담이 있었지만 나는 마약을 했다. 마음속에서는 “하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지만 내 몸은 “빨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마약 앞에서 무력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마약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2020년 6월이 되었다. 셰어하우스에서 월세를 내지 못해 거의 쫓겨나다시피 그곳을 탈출해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셰어하우스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받아 다시 필로폰을 샀다. 나는 다시 마약의 늪에 빠졌다. 한 달 동안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쉼 없이 내 팔에 필로폰을 주사했다. 나는 한 달 만에 체중이 8KG가 감소했으며 피부는 검붉은 색으로 탁해졌다. 그야말로 소위 말하는 ‘약쟁이’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거울을 보며 “살이 적당히 빠져서 괜찮게 보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착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병원에 입원할 날이 되었다. 나는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하면 마약중독이 해결될 줄 알았다. 병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퇴원 후 NA에도 나가며 회복에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나는 4개월 동안 단약에 성공했다.

2020년 12월 나는 다시 안 할 줄 알았던 필로폰을 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바로 소위 말하는 ‘마약을 하고 즐겼던 자극적인 이야기들 말뽕1) ’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모임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며 극심한 갈망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절대로 약을 하지 않기로 모임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고 나 자신에게도 맹세하였지만 그 맹세는 불과 1분도 안되어 깨졌다. 나는 다시 마약에 늪에 빠졌다. 그때부터였다. 즐기려고 필로폰을 하였는데 하면 할수록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럴수록 나는 필로폰의 양을 훨씬 더 많이 주사하였고 그렇게 내 몸은 망가졌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환청이 들리며 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다 마약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망상에 빠졌다. 횡설수설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조증이 왔고 그러다가 갑자기 울다가 잠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비참했다. 마약을 끊고 싶었고 하기도 싫었다. “이제 절대 안 해야지”라고 수십수백 번을 마음속에서 다짐하며 “내일 마약을 모두 버려야지”라고 말하고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 울면서 내 왼쪽 팔에 다시 필로폰을 주사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한탄했다. 나는 그냥 잘 살고 싶었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난 처음부터 마약중독자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마약이 날 놓아주지 않았다.

그대로 절망에 빠지던 중 NA멤버 선생님한테 톡이 왔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돌아오렴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는 내용이었다. 톡을 읽자마자 눈물이 났다. 재발해버린 상황에서 혼자인 줄 알았지만 나에게는 든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야 다시 깨달았다. 수많은 생각을 하던 나는 다시 인천참사랑병원 외래 진료에 가서 원장님께 재발 사실을 다 털어놓았다. 나의 수많은 재발을 보셨던 원장님은 “마약은 어느 순간 영적인 힘을 받아서 끊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다 보니 약을 안 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단약의 의지를 다짐했다. 그리고 재발 원인을 분석하여 나에게 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하나씩 없앴다. 자극이 될 만한 언행, 나의 돈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3만원씩 받아서 쓰는 생활, NA모임 다니기, 무리하지 않기 등 비교적 간단한 것들이지만 처음에는 많이 불편하고 귀찮았다. 하지만 나는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드렸다. 현재 단약 9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약을 하지 않는 것이 처음이라 많이 두렵지만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다짐한다.

상담소감문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라는 성경문구가 생각납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 살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죽지 않고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는 제 자신을 보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겁먹은 아이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희망을 잃은 참혹한 현실에 살고있던 저에게 소망의 빛을 보여주신 여러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특히 상담사님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상담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실텐데 저에 관한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으시고 품어주셔서 따뜻한 온기 속에 차가운 저의 마음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상담을 통해 몰랐었던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잃어버렸던 제 자신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있는 수많은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어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게 되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병이 든지도 모른 채 살아갔던 아픈 제 자신을 돌보게 되었던 지난 상담기간은 제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제 상처를 회복시키고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상담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나에게 있을 귀하고도 소중한 상담시간들을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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