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나로부터 -박 상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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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겪어봤던 마약이란 문제를 다시금 떠올리면 지금도 내가 겪고 있는 수많은 상처의 아픔과 고통이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아픈 기억을 더듬어 수기를 쓰려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약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을 수많은 영혼들과 치료방법을 몰라 그저 방치된 채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중독자들을 위해 그리고 약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마약이 얼마나 무섭고 큰 아픔의 시작인지를 알리고 싶어 생각조차도 하기 싫지만 부끄러운 아픈 과거를 이 글로 알리는 바입니다.

마약은 악마입니다.
마약이란…….
한 사람의 삶을 파멸로 몰고 가는 도구이며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도 고통과 상처를 주는 악마입니다. 또한 마약 중독이라는 병은 전염병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여 걸린 치유하기 힘든 고질병입니다. 물론 ‘약물의 파급력’이란 것을 전염병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이란 온전히 자신의 몫인 것이고 주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도 결국 자신의 선택인 것이므로 그 누구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중독에 이르는 길을 자신이 선택했으니 회복의 책임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걸 밝혀둡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처절히 후회하며 어떡하든 벗어나 보려 하지만 그런 자각증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고치기 힘든 말기 암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을 보게 되는 무서운 육체적/ 정신적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의로 시작하든 타의로 시작하든 선택하여 한 번 시작된 마약은 결국 경제적 어려움, 가정파탄, 사회적 고립, 반복적인 구속과 출소, 우울증과 자살시도,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마약을 상습적으로 사용한 사람이라면 하나의 공식처럼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순서일 것입니다.
개중에 ‘나는 예외야…….’하는 사람도 보게 되지만 결국 예외란 없다는 것을 수많은 세월을 거쳐서야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지 누가 조금 더 빨리 누가 조금 더 늦게……. 경험하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따름입니다.

권유와 호기심으로 약물을 시작하다.
아스라이 먼 기억을 떠올려 생각해보니 옛날엔 약국에서 조차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았던 러미나를 술집 웨이터를 하던 친구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약물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때가 18살이었으니 지금의 내 나이를 따져보면 마약과 함께한 시간은 어림잡아 27,8년 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때만 해도 약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환각증세가 오면 깨기 전에 또 먹고 이런 식으로 며칠을 계속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시 더 강한 자극을 위해 몇 달을 계속해 환각 증세로 보낸 적도 있으니 이때부터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여자 친구가 ◯◯시로 가출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시로 갔습니다. 이때 환각제를 먹는 친구들과 떨어져있어 그랬는지 몇 년 동안 멀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이 나에게 가장 자유스러웠고,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다 다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 때 내 나이 20대 중반이었습니다. 고향 친구들은 이미 대마를 흡입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같이 대마초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대마하고 약(러미나)을 함께 하면 환각증세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회여론이나 분위기가 지금처럼 강하게 비난하거나 하는 시절이 아니라 그런지 무작정 빠져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멋지고 안정적인 차를 구입해 고속도로에서 지난 번 달렸던 속도보다 더 빠르고 신나게 달리고 싶은 욕망이 있듯이 마약도 좀 더 강한 환각을 찾다보니 히로뽕에 대한 동경이 마음에 있었나 봅니다. 그러던 때 한 친구가 히로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주사바늘을 통해 맞고 그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그때의 느낌은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이틀정도 잠도 식사도 못했고 심각한 고통에 빠졌습니다. 가정에 대한 도리와 책임을 느꼈는지 아니면 사회에 질책이 두려웠는지 몰라도 후유증에 심했습니다. 그 후 한 2년 정도 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각한 스트레스였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힘들 때 문뜩 떠오르는 것이 히로뽕이었고 다시 취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약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
그러다 아내가 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과 가깠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배신과 분노, 좌절과 절망으로 나는 내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의욕 상실과 대인기피, 사람에 대한 불신 등 수 많은 것이 밤낮없이 나를 괴롭힐 때, 내가 선택한 위안거리는 히로뽕이었습니다. 방황의 해결은 히로뽕에 있는 것이 아닌 데도 오직 히로뽕만이 해결책인양 착각하고 심취했다가 합의이혼하고 구속되었습니다.
처음이라 집행유예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올 당시만 해도 이젠 그만 끊어야겠다는 생각과 아직도 풀지 못한 분노가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를 했고, 한번 시작하면 일주일 또는 열흘 정도 계속했으니 손을 뗀다는 생각과 환각 속에 살고 싶다는 생각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은 같지 않았고 꿈과 현실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런 상태가 7,8년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후배의 소개로 두 번째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약을 끊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두 번째 여자와 외국에 나가 생활하기로 결심하고 작은 아파트와 부동산 사무실도 처분해서 동남아의 한 국가로 이주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마약과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딸아이 학교문제는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고, 사소해 보였던 그 문제가 커지면서 여자와 딸이 먼저 한국에 들어왔고, 나는 혼자 남아 한 달여를 고민했습니다. 언어소통에 문제도 있고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니 외로움은 커졌고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결국 다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시작한 일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만나보고 싶었으나 찾을 길은 없었고, 보고 싶은 마음과 외로운 마음에 마약을 다시 시작하면서 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자와 연락이 되어 그전처럼 같이 살진 못했어도 일주일에 4,5일 정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와중에 6,7년 만에 친구한테 연락이 왔고 이 친구는 내가 마약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내게 히로뽕을 가르친 친구였고 내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안다며 히로뽕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에게 마약을 제공하던 내연의 탈북여성이 구속되게 되었고 친구도 구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사건은 나한테도 미치게 되었습니다. 내 여자는 언제까지 기다려준다고 약속을 하며 자수를 권유했습니다. 난 사랑하는 여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체포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자진 출두하였습니다.
구속되어 있는 동안 여자는 소개해준 후배와 두 번 면회를 왔었고, 그 다음부터 연락도 면회도 없어 여러모로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 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면회를 왔을 때 둘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뜻밖에 3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고 전화를 해서 만나 얘기를 해보니 수감생활 중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다시 또 깊은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것은 첫 여자와의 이별보다 더 깊은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마약을 시작했습니다. 환각이 기쁨과 슬픔을 열배로 확대시키듯이 나의 마음속엔 증오심만 열배 이상 커졌습니다. 죽이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습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주 가까이에서 잘 안다고 생각했고 나를 따르던 놈이 이렇게 배신하다니? 참으로 믿었던 놈인 데……. 이런 생각이 참으로 나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죽고 싶다는 심정에 빠졌습니다. 세상을 버린 것은 나인지 모르나 모든 죄는 여자로부터 시작됐고 그래 세상을 버리고 죽는다 해도 혼자 죽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자와 함께 후배를 죽이고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너희 둘은 잘못한 만큼 벌을 받는 것이고 그 심판은 내가 해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후배 집으로 걸어가며 연로하신 어머니가 떠오르자 동생에게 어머니의 남은 생애를 부탁했습니다. 묵묵히 듣기만 하고 통화를 끝낸 동생은 한 10분 후 전화를 해서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형은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가버리면 남아있는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 봤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명절날 가족끼리 모였을 때, 친척들과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 빈자리를 생각해봤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아버님 제사나 아픈 사람이 있을 때를 말했습니다. 혼자 계신 어머니의 슬픔을 물었습니다. 혼자 가기는 쉽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몇 년 몇 십 년을 마음에 안고 살아야 하는 어려움은 생각해 보았느냐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형의 결심에 따르고 같은 남자로서 이해는 가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라는 말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스스로 다시 또 깊은 격정속의 고민과 앞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회복 노력을 하다.
오랫동안 생각하다 남은 사람들의 몫을 이해했고 송천재활센터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암담하고 현실문제에만 얽매여 교육이나 기타 프로그램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10여명의 식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세상 아픔을 나만 홀로 지니고 산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서서히 들게 되었고 선임자들의 지도에 힘입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은 후부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집단 심리치료와 웃음치료 그리고 미술치료와 상담을 통해서 내 자신의 자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조금씩 나 이외의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맺게 된 것도 이곳에서 만난 좋은 인연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중독에 이르게 된 경위에는 신체적, 정신적, 혹은 환경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영적인 각성이 내게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주위에 그 누구도 없을 때 과연 내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 없는 행동을 해 본적이 있던가? 자문하게 되었고 또 그런 삶을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상대방이 나에게 아픔만 주었다는 원망이 가득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모든 잘못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마약 때문에 내 스스로를 얽어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 그 모든 것은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이며, 그것을 치료하고 기뻐하는 것도 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제어하고, 통제하고 때로는 격려하는 일들은 혼자보다는 우리가 낫고 그래서 이런 치료시설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약물 시작’ 생각조차 마시라.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때 러미나라는 작은 시작이 마약중독으로 발전했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대마초를 거쳐 히로뽕으로 발전해서 더 큰 중독의 늪으로 빠졌습니다. 이곳에 와보니 마약은 누구나 한 번 시작하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외길 수순이며 점점 더 강도만 심할 뿐이지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단계에서 과감하게 뿌리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해진 순서대로 따라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정말 ‘약물의 시작’이라는 첫발을 아예 생각조차 마시고 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시작은 단순하게 출발을 합니다. ‘호기심에…….’ ‘친구들 때문에…….’ ‘분위기 맞추기 위해…….’ 그렇지만 중독의 단계에 이르면 벗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복으로 가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할뿐더러, 언제 어느 때 재발이 될지 모르므로 ‘완전한 회복’이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평생을 지고 가야할 짐이자 질병이므로 아예 첫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일단 중독의 덫에 걸렸다면 혼자 힘으론 안 된다는 사실을 재빨리 자각하시고 치료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의 길이라고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약물로 거의 모두를 잃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 제게 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던 여인을 두 번씩이나 잃었고, 집도 그리고 생활터전도 삶의 의욕도 잃었습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그래도 아직 젊다는 패기와 용기뿐입니다. 사회에 복귀하면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새로운 여인도 만나 사랑도 하고 가정도 꾸미고 싶습니다. 만약, 꿈이 이루어진다면 가정을 소중히 가꾸어야 하고 나와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마약을 생각하지 말아야겠지요. 그래야 일과 여인, 행복한 가정 속에서 남은 인생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제 자신 그릇된 선택으로 이렇게 멀리 돌아 현 위치에 서게 됐지만, 내 뒤에 오는 이들은 앞선 이들의 발자국을 거울삼아 좀 더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랄 뿐이며, 저 역시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를 꿈꾸며, 오늘도 노력하는 자세로 교육에 임한다는 말로 긴 글을 맺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