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쾌락과 인생을 바꾸지 마십시오, 절대! - 우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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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공기가 훈훈해 지는 게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6월의 요즘이다. 바로 앞 벽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사람은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미래에 대해 도전하고 설계 할 수 있다.” 나는 이 문구를 같은 곳에서 한번도 아닌 4번이나 마주하고 있다. 오후 교화 TV시청 후‘마약체험수기’공모전이 있다는 자막이 흘러 지나간 후 왠지 멍한 것이 이 생각, 저 생각을 해 보게한다. ‘휴~ ’하고 한숨이 나오는 동시에 졸필이지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지난 32년이란 세월을 적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리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한명의 여동생과 행복하게 살아왔다. 아버지는 고향이 충청도 천안으로 어머니를 만나시려고 그리되신 건지 인천으로 연고지를 옮기셨고, 맨손으로 시작하시어 길거리 노상에서 불량식품인 설탕 볶기 장사도 하시고 틈나는대로 기술을 배워 인쇄소에 취직을 하셔서 열심히 일하시며 가정을 이루셨다. 한 푼, 두 푼 돈을 저축하시고 살림을 늘려가며 우리 두 남매 키우는 재미가 그리도 행복하셨다 한다. 부모님의 깊은 사랑 때문인지 나는 무난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아버지께선 스스로가 못 이룬 대학이란 큰 벽을 핏줄인 아들이 꼭 진학하길 바라는 마음이 무척이나 크셨다. 허나 제 인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바뀌기 시작하였다. 말로는 호기심 많은 나이는 지났다고 그렇게도 불러 외쳤으면서도 대입시험을 1개월 남겨 둔 10월 초쯤 친구로부터 받은전화 한 통. “야! 너 히로뽕이란 마약 해 봤어?”라는 내용의 말 한마디.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 정말 그런 게 있으면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호기심이었는지 바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을 텐데….” 이 글을 쓰면서도 한숨만 나온다. 친구를 만났더니 히로뽕이란 마약이 아닌 염산날부핀이란 진통제 약을 주사기에 담아 주었다.그 자리에서 주사기에 투약을 하고 말았다. 약을 투약하면서 몸은 점점 약물에 익숙해져갔고 생활은 나태해져 부모님의 소원이었던 대학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고, 고등학교는 겨우 졸업하였다. 그즈음 자연스럽게도 너무나도 무서운 히로뽕이란 것을 접하게 되었다. 재수하면서 부모님이 주시는 학원비며 온갖 거짓말로 부모님에게서 타 낸 돈으로 마약에 젖어 지내다가 결국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대는 못된 버릇마저 생겨 1996년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 위반으로 OO구치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50일을 수감한 후 집행유예로 출소하였다. 반성하고 뉘우친 것도 없이 출소하자마자 구치소에서 알게된 선배, 지인들로 인해 한층 더 깊이 마약에 빠지게 되었다. 마약을 쉽게 구하고 쉽게 투약 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 이젠 투약자가 아닌 판매자로서의 길을 걷다가 결국은 또 10개월 만에 구속되어 2년이란 세월을 군대도 갈수 없는 면역자가 되어 또 다시 수감 생활을 하였다. 저의 어머니는 교도소 접견실에서 처음 마주보며 목메어 우시면서“어릴 적 해맑던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셨다”고 하시며 몸저 앓아누우시다가 결국엔 혹이 생기셔서 대수술을 받으셨다. 그해 아버지께서는 힘들게 모으신 돈으로 사업을 하시다가 IMF로 인해 부도라는 아픔을 겪으셨는데 사업실패보다는 저로 인한 충격이 몇 배로 크셨다 한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다시 한번 삶에 대한 각오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출소하여 정말 열심히 살았다. 2001년에는 가정을 이루어 결혼도 하였건만 1년을 채 버티지도 못하고 생활고가 힘들고 삶이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금 마약에 손을 대어 또다시 구속되어 2년 4월이라는 수감 생활을 하였다. 마약을 하는 선배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듯 어찌 보면 절대 헤어 나 올 수 없는 길을 걷는 듯 내 삶은 마약에 푹 빠져 있었다. 나 스스로 조금이나마 느끼고 깨닫게 한 것은 1년을 만나 서약을 하고 한평생을 같이 하자고 맹세한 아내와의 이혼이었다. 이 이별은 나 하나만이 아닌 우리 가족에겐 더 없는 아픔이었으며 나에겐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2004년 6월 새롭게 태어나는 마음으로 다시금 사회의 구성원으로 첫발을 디뎌 지인의 도움으로 부동산 중개업소에 직원으로 취직하여 하나하나 착실히 공부하며 희망의 끈을 잡고 살아가면서 비로소 참된 행복의 가치를 알았다. 열심히 살다보니 지인의 소개로 다시금 학원 강사를 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미래를 약속하였고 아내 역시 부지런히 노력하였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 더욱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라는 지표를 던져 주었건만 이 못나고 어리석은 자는 마약이라는 것에 또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아 지금 구치소에서 재판 받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잠깐의 쾌락과 즐거움이 지금의 현실을 대신하지 못하건만 나약한 것인지 인내가 부족한 것인지 마약 앞에만 서면 주저앉고 말아 버린다. 지난 10년을 후회하면서 살았건만 또 다시 후회를 거듭하며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이렇게 쓰레기 같은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 내 모습이 이젠 부끄러움을 넘어서 죽고 싶기만 합니다. 이젠 더 이상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잃고 싶지가 않다. 하루에 한번씩 출근하기 전 무거운 몸을 이끌고 1회 차 면회를 하고 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볼때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아픔에 너무 슬프다. 내 자신 스스로가 치유해야 될 아픔이기에 모진 마음으로 입술을 깨물어 본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2세가 내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데, 어느덧 환갑을 앞둔 부모님은 10년을 이렇게 망나니 같이 사는내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눈물만이 흘러내린다. 이제는 한 가정의 지아비로서 못난 아들이 아닌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한번 살아보려 한다. 그동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마나 해이한 정신 상태로 살았는지 한심하고 어이없는 인생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진정 깨닫는다. 어떠한 재판 결과가 나올는지 모르지만 다신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글로써나마 내 심정을 동봉해 가슴 속 깊이 간직하려 한다. 그리고 크게 외치고 싶다. “잠깐의 짧은 즐거움과 쾌락을 스스로의 인생과 바꾸지 마십시요! 절대….”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