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할 가치가 있는 세상 그리고 다시 일어서며 - 김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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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푸르른 하늘이다. 눈이 부시도록…. 온 실록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대로 그 짙은 녹음을 뽐내는 요즘.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아름다움을 여유 있게 느낄 수 있다. 얼마만인가? 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게 된 것이…. 그 만큼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며, 시달리며, 여유 없이 살아온 나. 글쓰기에 앞서 먼저 지금의 나를 이렇게 변화 시켜주신 하나님과 늘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주시는 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 지부의 이재규 실장과 조헌수 전도사께 너무나도 감사함을 느낀다. 돌아보기도, 떠올리기도 싫은 나의 어두운 과거, 그러나 그 누구라도 다시는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마약의 늪과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과거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근검, 성실을 신조로 삼으시며 건축업을 하셨던 아버지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어머니, 공부 잘하고 유순한 누나, 이런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활달했던 성격이라 이것저것 크고 작은 사고도 많이 쳤다. 보수적이고 엄하신 아버지였던 터라 그럴 때마다 매질도 당하고 꾸중도 많이 들었다. 당시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중학생인 나는 그때마다 순화되고 훈육되기보다는 반항심과 반발심이 더 했던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싸움도 잘 했고 불량스럽게 놀기도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학교 성적은 반에서 10등 밖으로 밀려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구가 좋았고 그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았다. 남들보다 일찍 담배와 술을 배웠고 여자와 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타락해 가던 나. 17세 때부터 나의 배짱과 싸움실력을 눈여겨보던 선배들에 의해 대구‘동성로파’라는 조직에 가입하게 되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 아닌 정말로 죽어야 하는 엄한 체계 속에서 온갖 험한 일을 행했고 겪었다. 그러던 중 19살 되던 해에 친구와 선배와 함께 조직간 싸움을 하는 와중에 상대 조직의 한 사람이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직접적인 사인이 내가 가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범으로 엮여 조직범죄단체처벌법에 의해 5년이라는 징역형을 받게 되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땐 조직의 일로 징역을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또 무슨 훈장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니 자연 반성이나 갱신의 마음이 들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는 와중에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시는 일이 생겼다. 자유가 구속된 몸이 었던지라 나가서 장례도 치룰 수 없었고 집안의 장남인 내가 없으니 누나가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보니 그때 그 암세포와 싸우던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핏줄인 아들이 저기 먼 곳에 있는데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한이 맺혀 돌아가셨을까. 생각하니 나 자신이 참으로 못났고 눈물이 흐른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실감나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면회를 오셨는데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모자를 쓰시고 오셔서는“용순아! 아버지 어쩌면 너 나오는 것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 잘 모시고 누나하고 우애 있게 지내고 네가 아버지 몫까지 가족을 책임져야 된다”라며 실질적인 마지막 유언까지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난 아버지의 그 마지막 부탁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청소년기를 어두운 곳에서 보내고 1997년 24살의 나이에 다시 사회로 나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헛된 영웅심이 자존해 있었는지 또 다시 조직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땐 조금만 불법적으로 움직이면 큰돈을 만질 수 있고, 그리고 의리 아닌 의리가 있는 건달이라는 직업이 좋았다. 그렇게 명분을 찾고 건달에 대한 주관이 뚜렷했던 나 역시 마약이라는 것을 경멸했고 마약하는 선배나 주변의 사람을 싫어했다. 그러던 내가 마약을 접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998년 3월경에 평소 그리 가깝지 않은 친구를 채무 문제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갚아줄 돈이 현재 없으니 대신 이거라도 갖고 가라, 팔면 아마 빌린돈 보다 많이 회수할 수 있을거다”라며 건네준 것이 바로 필로폰이었다. 그렇게도 마약을 경멸하던 내가 그때는 이상하리만큼 거부감 없이 그것을 받았고(아마도 내 돈 대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것이다) 나중엔 호기심에 스스로 투약까지 해보게 되었다. 몸이 격렬한 쾌감으로 젖어드는 걸 느끼며 나는 서서히 그 깊은 수렁으로 한발을 내딛고 있었다.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자신 있게 말하지만 그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 의지로 마약 을 끊을 수 있으리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중독이 되어버린 나는 끊을 수가 없었다. 필로폰을 맞지 않으면 아팠고 필로폰을 하고 나서 섹스를 경험한 그 쾌감에 도저히 약을 하지 않고는 성 관계조차도 흥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마약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 마약을 접하고 4개월이 지났을 때 나에게 마약을 가르쳐준 그 친구에 의해‘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으로 구속이 되었고 그 이전의 폭력사건과 겹쳐 또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마약으로 복역을 할 때도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보다는‘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며 나를 밀고한 그 친구에 대한 원망만 가득했었다. 그렇게 첫 마약으로 처벌을 받고 다시 사회에 나왔지만 단약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다. 이것은 무조건 조심하고 잘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곧 다시 예전과 같이 조직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고 또 그러다보니 자연히 마약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끊을 수가 없었다. 늘 밤에만 생활하게 되고 주변에 온통 건달, 노름꾼, 마약하는 사람들 등 사회의 어두운 곳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예전의 마약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마약만 하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번 이 필로폰으로 처벌을 받고나니 이 필로폰을 하고나서는 꼭 피해망상에 시달리곤 했다. “또 검거되면 어쩌나?”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늘 피해의식과 불안, 의심 이러한 것들로 인해 정말 괴로우면서도 오히려 이런 괴로움을 또 약으로 잊으려고 더욱 자주 주사기를 팔에 갖다 대곤 하였다. 2000년 11월에 또 다시 필로폰 투약혐의로 구속이 되었고 다른 공무집행방해사건과 같이 처벌 받게 되어 3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 이때는 정말로 마약을 한 것이 후회되었다. 나이 27살에 또 다시 3년이라는 길고도 긴 시간을 보내며 교도소 안에 있으면서 어떤 때는 어차피 포기한 인생인데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싸우고 스스로를 자학하고 자해로 내 몸을 상하게 만들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이 미웠고 싫었다. 그렇게 3년의 형기를 마치고 2004년 5월 29일 새벽, 비를 맞으며 안양교도소 정문을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의 선배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한 선배가 “그동안 수고 했는데 회포 좀 풀어야지? 자 한 잔 해라”며 주사기에 담긴 필로폰을 건네주었다. 나오기 전에 다시는 필로폰을 하지 않으리라고 각오하고 나왔던 터라 처음엔 거부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필로폰의 느낌을 안 내 몸뚱이가 먼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배가 아프고, 손이 떨리면서…. 결국 두 번째의 유혹에 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징역을 3년이나 살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필로폰을 했던 나. 나 자신도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남들이 보기엔 어떠했을까? 【필로폰을 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은 재범을 하는데 그 중 50%가 1년 이내에 다시 들어옴(첫 재범 시점이 아닌 다시 검거되는 시점) 또 그 중 20%정도가 6개월 이내에 다시 검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의 경우처럼 나오자마자 필로폰을 해서 3일 만에 다시 구속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이제 내 몸 안의 필로폰 성분도 다 빠져나가고 이제는 완전히 마약을 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끊었던 것이 아니고 없어 서 할 수 없는 환경이라 못했던 것 뿐 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오자마자 필로폰을 투약한 후 나에게 필로폰을 주었던 그 선배가 검거되면서 투약자 5명만 잡아주면 자신을 보내준다는 경찰 의 말을 듣고 나를 비롯한 7명을 밀고하여 또 다시 3일 만에 차가운 철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약 기운이 빠지니 너무도 비참한 내 모습이었다. 3년 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을 다시 경찰서에서 봐야만 했던 내 어머니. 경찰차에 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발악하는 나를 보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고개 돌려 우셨던 내 어머니. 경찰서 유치장에 앉아있으니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유치장 화장실에 들어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목을 매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구나, 내가 없으면 우리 어머니도 누나도 더 이상 애 태우지 않고 마음 편히 사시겠지, 그리고 나 같은 인생 은 하루빨리 사라져 주는 것이 이 사회에 도움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식을 잃었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 아니면 아직도 내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하나님의 은혜였는지 옷 을 매어 놓았던 그 튼튼해보이던 쇠고리가 끊어져 버리는 바람에“쿵”소리를 내며 넘어졌고 그 소리에 놀라 달려온 당직 경찰관에게 발견되어 응급조치로 살아남게 되었다. 다시 눈을 뜨니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내가 왜 이렇게 까지 비참하게 되었을까? 하는 서글픔에 한없이 울었다. 냄새나는 담요를 덮어쓰고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마음먹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기필코 마약을 끊어버리겠다고…. 선고 때 판사님이“출소하는 사람에게 다시 마약으로 유혹하 고 건네준 죄가 더 크기 때문에 다른 마약사범을 잡는데 협조했을 지라도 그 죄가 경감되지 않는다”고 판결 주문으로 그 선배에게 징역 1년 6월형을 판결했다. 나는 10개월의 형을 또 복역하고 2005년 3월 31일 새벽에 OO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출소하는 날 아침, 이전 사건의 발단원인을 알고 계셨던 어머니가 그 쌀쌀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교도소 앞 의자에 앉아 계셨다. 나 같은 놈도 자식이라고 춥다고 두꺼운 옷까지 준비해서 말이다. 사회로 나오자마자 예전의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의 연락이나 관계는 모두 끊어 버렸다. 그리고 마약은 혼자 힘으로는 정말 끊기 힘들고 또 언제 내가 마약이라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질지 알 수 없기에 오로지 마약을 끊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에 연락을 하게 되었고 이재규 실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났던 날 바로 마약중독자에서 회복자로 거듭나고 있는 한 여성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빛을 만났다. 조헌수 전도사님의 인도로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그 복음 메시지 하나하나가 모두 나와 연관되어진 얘기인 걸 느꼈다. 이때까지 나를 잡고 흔들었던 사탄과 마귀의 존재, 내가 왜 그렇게 마약을 끊지 못하고 과거를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게 되었고 마약을 끊기 위한 최고의 힘을 가진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실시하는‘단약을 위한 라파(치료하시는 하나님)교정교실’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약물 남용 및 중독의 폐해에 대해 강의를 듣고 내가 몰랐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 알게 되었다. 또 매주 토요일마다 NA모임이라는 중독자 치료모임에도 참석하여 서로 간 아픔을 공유하며 힘을 얻고 힘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과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비행청소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 지나온 삶을 이야기 해주고 또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들으며 진정으로 바르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앞으로는 약물중독에 대한 나의 경험이외에도 이론을 겸비하여 미약하나마 아직도 약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자 약물치료전문가과정도 공부해볼 생각이다. 아직 나 역시 회복과정에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런 활동과 일들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일련의 활동이 나를 지키고 또 남을 살리게 되는 길임을 나는 믿는다. 참으로 쓸모없는 31년간의 삶을 살아왔던 내가 마약을 끊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정체성과 자아를 확립하는 데에는 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의 역할이 컸다. 거듭 나를 살리신 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 지부장님 이하 모든 스텝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나 역시 내 어두웠던 과거를 오히려 발판으로 삼아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을 마음으로 가만히 다짐해 본다. 마약퇴치운동본부와 같은 헌신적인 단체와 사람들이 있으므로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마약 환자들이 더 이상 불안과 영적인 시달림에 고통 받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누리게 되는 날이 오게 되길 바라며 꼭 마약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그래서 마귀와 사단이 더 이상 이 땅에 붙이지 못할 그런 날이 오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아! 정말 살 만한 세상이고 아름다운 계절이 아닌가?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