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성당지기 아저씨는 매우 조용하고 무표정해서 다른 신자들은 이 아저씨와의 대화를 거의 안하고 지낸다. 이 아저씨가 1998년 어느 날 작은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이곳에 찾아 왔을 때 나는 성당의 앞마당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이 아저씨가 찾는 주임 신부님이 계시는 곳을 안내해준 적이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아저씨가 이곳에 온 다음날 주임 신부님께서는 성당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나와 잘 아는 분의 동생인데 몸이 쇠약하여 이곳에서 요양 겸 성당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살려고 왔으니 여러분들이 사랑과 우애로 맞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 아저씨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그 사람의 이름은 '둁둁둁'라는 것과 나이는 38살이고, 얼마 전까지 외항 선원을 하였다는 것 그리고 아직 미혼이라는 것이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가끔 이곳 성당의 앞마당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학교 생활 이외의 시간은 여기서 살다시피 하면서 지내지만 이 아저씨 아니 둁둁둁씨와 한번도 대화를 나누거나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둁둁둁 아저씨가 이곳에 온지 6개월 정도 된 부활절 이튿날이었다. 나는 부모님들이 늦은 밤 안방에서 조심스럽게 나누시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둁둁둁 아저씨의 과거 내력은 대강 이러했다. 1960년에 태어난 둁둁둁씨는 지방 중소 도시에서 목재상을 하시는 부모님과 위로 형님 한분, 누님 두분 그리고 4살 아래의 남동생, 6살 어린 여동생, 늙으신 할머니와 오래된 기와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목재 사업이 무난히 잘되어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이 생활하던 아저씨에게 최초의 인생 시련은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3년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그로 인한 사망으로 아저씨의 집안에는 암운이 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를 이어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그 다음 해에는 어머니께서 확실한 사망 원인도 모르는 체 돌아가셨고 막내 동생은 소아마비 장애가 와서 불구가 되었다. 그래서 둁둁둁씨의 집안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형제 중 맨 위의 형님은 동생들을 뒤로 한 채 카톨릭 수도원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 때 우리 성당의 주임 신부님과 인연이 맺어졌다고 했다. 나머지 형제들은 큰아버지께서 남은 가산을 정리 할 무렵 우리 나라의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친척집으로 맡겨졌고, 이 와중에서 둁둁둁씨는 큰아버지 댁으로 보내졌는데 동화에 나오는 '콩쥐 팥쥐'(구성이나 출연 인물에 있어 내용이 조금은 다르지만)의 줄거리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런 생활은 아저씨를 비행으로 이어지게 만들어서 학교에서나 집 근처의 동네에서는 힘없고 약한 또래 아이들을 괴롭히고 빼앗은 돈으로 술을 사 마시는가 하면 늦은 밤 길가는 여자들을 추근거리고(성폭행 등) 불량배들과 어울리고 싸우는 온갖 못된 짓,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었다고 했다. 몇 번에 걸쳐 파출소에도 끌려가고 무섭기만 한 큰아버지가 빼내주어 더 큰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지만 큰집에서 자신을 보는 눈이 곱지 못한 것을 알고 있는 아저씨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이런 생활 환경을 견디다 못한 둁둁둁씨는 중학교를 졸업(집안 사정으로 2년 늦게 하였음)하던 해에 큰집을 뛰쳐나와 홀홀 단신 객지를 떠도는 독립된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가 마지막 정착을 한 곳은 부산의 항구 지역에 있는 영세한 규모의 선박 화물의 배달을 용역업으로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있으면서 둁둁둁씨는 부두에 정박한 큰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박 회사에서 취사 담당 임시 선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여기에 응시해서 채용이 되었고 그 길로 항해 길에 올랐다고 했다. 생전 처음 타보는 배는 육지에서 생각한 것과는 영 다른 기분이었다고 했다. 육지로부터 멀어지면서 멀미가 나고 몸이 상태가 나빠지자 평소에 마시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술을 마시는 주량이 육지에서의 그것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있는 대로 남김없이 마구 들어가는 상태에서 조절이 안 되는 그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먼 항해를 나가는 배에서는 언제나 있는 도박판이 벌어졌는데 약간의 취기가 오른 아저씨는 술기운에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도박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대개의 도박판이 그렇듯이 속임수를 쓰던 선원과의 마찰로 인해 더 이상 도박판에 끼지를 못하고 분한 마음을 술로 풀었던 아저씨는 그날 밤 정상인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상에서 살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었다. 평소 근무하던 곳이 주방이다 보니 술을 주방에 홀로 와서 마시고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주방용 조리 칼이 눈에 띠자 낮에 일어났던 도박판에서의 분노가 아저씨를 사로잡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칼을 들고 원한을 품던 선원의 침실로 들어가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던 것이었다. 이 사고로 다행히 상대 선원의 생명은 이상이 없었으나 아저씨는 그 길로 먼 타국의 항구에서 하선하여 고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고 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아저씨는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보아도 자신은 다시는 배를 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미우나 고우나 중학교를 마치고 집 나온 서울에 있는 큰집에 한 번 가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와 큰집에 도착했을 때 큰아버지 내외는 안 계셨고 손아래 사촌 남동생만 있었다고 했다. 그날 밤 멋쩍은 분위기도 해소할 겸 사촌 동생과의 술자리가 벌어졌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은 의식을 잃고 잠이 들어 버렸는데 아침에 갈증이 나서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러 방을 나오는데 희미한 야명에 사촌 남동생이 칼에 찔려 의식을 잃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방안은 온통 피로 가득했고 정신이 조금 나면서 자신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엄습하면서 한동안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혹시 동생이 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전화기로 다가가서 응급 전화번호를 돌려 구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이후 아저씨의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곤란한 인생 역정은 이러했다고 한다. 병원으로 실려간 사촌 남동생은 이미 숨져있었고, 큰아버지에게 이 일을 알린 다음 자신은 경찰서로 연행되어 신문과 조사를 받고 그 길로 정신 감정을 받은 후에 구치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음주 후에 정상적이 아닌 상태에서의 살인으로 인정 되어 치료 감호 처분을 판결 받고 지방에 있는 치료감호소에서 7년 동안 있어야 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동안 지난 일을 뉘우치면서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일이지만 자신이 저지른 패륜적인 범죄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 몇 번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으나 교도관들과 관계자들의 조기 발견으로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고 했다. 이때 아저씨는 자살도 하지 못하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치료 보호 수감 생활을 거의 끝낼 무렵에야 이것을 깨닫게 되었고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는 한동안 단주 친목 모임에도 나가고 생활을 잘 해 나갔으나 도저히 이것만으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이를 승화시켜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는 좀더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서 어릴 때 우연히 형을 통해 알게 된 주임 신부님을 찾아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이층 내방에서 학교 과제물 준비를 하다가 갈증이 나서 주방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들은 부모님이 나누시는 은밀한 이야기를 듣는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과 전율 그리고 감동 등이 교차하면서 어떤 힘에 이끌려 끝까지 다 듣게 되었는데 평소에 의식을 잃을 정도로 미련스럽게 마시는 나의 술버릇도 자칫 이런 좋지 못한 상황을 맞으면 잘못 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성당지기 둁둁둁아저씨의 너무나 엄청스런 과거 비밀을 들은 나는 그전에 시도해 보려 했던 아저씨와의 친함을 이루지 못하고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런 분이야말로 나 같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서 위로와 인생의 색다른 면을 보여 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양가 감정이 생겼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나는 아저씨에게 접근하여 친하게 사귀어 보려는 시도를 오늘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잘되지 않고는 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악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모처럼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무엇인가 잘 못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나를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친해지면 우리는 인간적으로의 좋은 관계를 이곳에서 같이 사는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잠자리 기도에서 아저씨의 마음에 평화와 안정이 영원하도록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 "둁둁둁아저씨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