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례 나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독실한 기독교 가정의 2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철저한 신앙교육을 제외하면 모든 것에 넉넉하시고 온화하셨던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런 부모와 형제들 속에서 막내인 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라났다. 이런 환경 탓에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씩씩하게 자라던 나에게 어두움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면서 차츰 우리집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격이 활발했던 나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한 두번만 제외하고는 전교1등을 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소년체전에 출전한 육상선수로 중학교 때는 남들보다 큰 신체조건 때문에 씨름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도 잘했다.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도 잘해 늘 칭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편모슬하에 자라면서도 구김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삶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시골에서 공부하기엔 아깝다며 큰 도시에 가서 공부시키라는 시골 중학교 교감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 3학년 때 B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를 오게 되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의 잘못으로 인해 육사를 졸업해 장군이 되리라는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공부도 잘했고 체격도 워낙 또래들보다 커서 학교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B도시에서 명문고라는 B고교에 입학을 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은 B도시에서 얘기만 하면 다 아는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었고 우리 집은 이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단칸 셋방에서 엄마, 형, 누나와 함께 네 식구가 발가락을 맞대고 잠을 자야하는 처지였다. 그때부터 자신에 가득 차 있던 내 자존감이 땅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방과후 집에 오기가 싫었고 겉돌기 시작했다. 부자집 친구들을 리드하기 위해 나의 비행은 서서히 태동되었다. 잘사는 친구들에 대한 괜한 자격지심이 발동했고, 허전하고 자존심 상한 내 심정을 위로라도 하듯 유복한 애들만 골라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잦은 가출과 술, 담배,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였고, 점점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인천, 광명 등 인근 도시를 원정 다니면서 패싸움을 하고 학교 내 불량서클도 결성했다. 또래는 물론이고 1, 2년 선배들마저 괴롭히고 돈을 갈취하는 학원폭력의 온상이 되어갔다. 그러나 온갖 비행과 술, 담배, 여자 등 어떤 것으로도 내 구멍난 마음이 메워지지 않았고, 메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큰 공허함만 다가왔다. 내겐 무언가 날 위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접하게 된 것이 본드였다. 학교 밖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본드를 불었고 학교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본드에 심취했던 내게 있어 주위어른들에게 야단을 맞게 되는 것이 싫어 대체약물을 찾게 되었고 친구를 통해 약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스무알 정도로 시작했다가 내성으로 인해 양이 늘어갔고 기절도 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선배들을 좇아 조직에 가담하였고 술집의 지배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대마초를 알게 되었고 대마씨앗을 구해 피우게 되었다. 약만 먹으면 한결같이 구토가 나오던 현상을 잠재우기 위해 약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약물에 대한 집착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곤했다. 그러던 중 영장이 나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생활 6개월만에 첫 휴가를 나와서 예전에 어울렸던 선·후배들과 지내며 고심하던 끝에 내 왼쪽 손가락을 자르고 말았다. 난 소속부대로 연행되어 불명예 제대란 씻을 수 없는 인생의 오점과 내게 신앙으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을 뒤로 한 채 나는 과거생활로 귀속했다. 나의 삶은 약물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그것이 내 얼룩지고 깨어진 인생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약물로 인한 금단현상으로 기억력 감퇴는 물론이고 급격한 체중감소와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으며 단순한 자극에도 폭력을 가했고 흉기를 드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와중에 심한 탈모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몸에 있는 모든 털들이 다 빠져버리는 정도였다. 눈썹마저 빠져버린 내 모습, 거기다가 손가락까지 없는 내 모습은 문둥병자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또 가까운 친구로부터 필로폰을 알게 되었고 각종 새로운 마약을 접하게 되었다. 투약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필로폰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금단현상이 나타났다. 십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복합적인 약물을 무분별하게 투여해 온 결과였다. 치아가 망가져 열 개 이상의 틀니를 해야 했고 성기능도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 점차 위험할 정도의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더 이상 혼자서는 지탱할 수 없는 정신적 고아가 되어 버렸고 누군가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세상 속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중증의 자폐증 환자의 모습이 되어갔다. 다행히 16년동안 눈물어린 절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노모가 계셨고 그런 노모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기도원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많은 신앙의 체험과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의 길을 결심하였다. 많은 것을 약물로 잃어버렸지만 나는 현재 신학원 2학년에 재학중이고 8년 동안 나지 않던 눈썹과 머리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며 21일간 금식을 통하여 성 기능장애도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빚을 졌고 세상에도 많은 빚을 졌다. 남은 인생은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으로 최선을 다해 잃어버렸던 지난날들을 만회하며 살려고 한다. 그리고 약물로 고통받는 영혼들과 함께 서로 위로하며 살길 원한다. 내가 한국마약퇴치본부를 알게된 것은 앞에서 내가 고백했던 신앙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데, 내가 기도원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체적으로 주의종으로 소명을 받고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구체적인 사역의 방향을 구하고자 21일 금식기도를 들어간 것부터 출발한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평소에 알던 한 안수집사님이 나에게 마약퇴치본부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나는 그때까지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으며, 이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사역의 방향을 놓고 금식기도를 했을 때 나의 기도 가운데 응답받은 것이 이곳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와서 처음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잠깐 적지 않은 실망감도 느꼈었지만,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상담에 관한 이론적인 지식도 필요하다는 도전을 받았고, 2급 상담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나자 정말 이 곳에 내담자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런 중에 약물상담가 전문가 양성교육 중에 그곳에서 다른 약물기관에 상담사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가 보호관찰소 수감명령을 받은 약물재소자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 왔다. 나는 마퇴본부에 자원상담자로 계속적으로 일을 하면서 그곳 기관과도 연계해 보호관찰소에 정기적으로 재소자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그 기관으로부터 자조모임(N.A)의 약물중독자들과 함께 운영해 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받았고, 현재 6개월이상 그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하고 있는 일들 중에는 중.고등학교 예방교육에 참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나는 지금하고 있는 활동들을 중심으로 목회의 비젼을 가지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먼저 처음 단계로 기독교내에 약물에 폐해를 알림으로서 기독교 단체에서 약물문제에 보다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활동들을 할 것이다. 또한 약물중독에 관한 전문 상담가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사례와 약물중독자들의 입장들을 전달하여 이론에만 그치는 상담이 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활동들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도 인천에서 비행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지만, 신학을 졸업하는 2년 후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비행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사역을 할 것이다. 그 안에는 약물중독자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또한 10대 아이들에게 약물의 심각성과 예방을 위해 일주일단위로 정기적인 콘서트형식의 집회를 이끌 수 있기를 원한다. 이것들이 진행되어지면 나중에는 약물환자들을 위한 재활의지를 심어줄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세워서 그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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