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7. Winter, 2017

 

  마약약물 정보 _ Drug story

윌리엄 버로스 ‘정키’

김애양
수필가ᆞ서울 은혜산부인과 원장
 

미국에 갈 때면 부러운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그 광활한 영토, 무한한 자원, 세계 곳곳에서 찾아 온 다양한 인파,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곧장 버릴 수 있는 하마 입 같은 쓰레기통, 어디에서든 줄을 서는 습관과 ‘정지’ 표시에 어김없이 멈추는 질서 정연함.... 이 큰 나라가 차질 없이 어떻게 잘 돌아갈지 신기하기도 하고 어떤 문제점은 없을지 의아하기도 한데 그런 내 의심을 해소하듯 미국 땅의 숨은 치부를 드러낸 책을 발견했다. 모르핀과 헤로인 중독자가 활보하는 곳이란 점이다. 윌리엄 버로스의 ‘정키’가 바로 그 작품이다. 정키(junky)는 쓰레기를 의미하는 정크(junk)에서 파생된 말로 ‘마약 하는 사람’을 뜻한다.

심연에 자리 잡은 신성하고 무한한 기쁨의 세계가 갑자기 드러났다.

아편은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철학자가 수 세기동안 토론을 벌여왔던 행복의 비밀이 아편에 있었다. 이제 그 행복을 1페니로 사서 호주머니 안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됐다.

왜 마약을 시작하나?

윌리엄 버로스는 1914년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정키’는 자신이 마약 중독자가 된 과정을 기록한 고백으로 주인공 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빌은 왜 마약 중독자가 되었을까?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의 빌은 몇몇 일자리를 전전했다. 사립탐정ᆞ해충 구제업자ᆞ바텐더의 경력이 있다. 신탁 기금으로 한 달에 150달러씩 받았으므로 일자리가 딱히 필요하진 않았다. 빌은 이렇게 말했다.

 

“왜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이런 질문을 받지만 스스로 중독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중독되기까지 거의 반년이 걸렸다. 중독자가 되려면 1년 동안 수백 방의 주사를 써야 한다. “애당초 왜 마약을 시작했나?” 라고 물을 수 있다. 강한 동기가 없어도 마약 중독자가 된다. 마약이 당연히 이긴다. 나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돈이 있었기에 주사를 맞은 것뿐이다. 결국 중독됐다. 내 곁의 중독자 대부분이 그랬다. 마약을 시작한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쓰다가 중독된다. 중독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니 중독자가 돼 아픈 것이다.

 

결론적으로 빌은 단지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이런 설명은 통증 때문에 모르핀 투여를 받고 그 후부터 차차로 중독이 되는 환자들에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다분히 이성을 지닌 사람이 자발적으로 마약을 택했다는 점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작가는 주변의 중독자가 다 이렇게 이유 없이 그저 마약이 있었기에 투여한 것이라고 말한다.

중독자가 되기까지

빌의 곁에 항구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뭐든 훔쳐다 팔았다. 하루는 모르핀을 훔쳐왔다. 30mg의 모르핀이 담긴 주사기 75개였다. 이때부터 빌은 마약 중독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주사 하나를 자신에게 투여했다.

 

모르핀 약 기운은 처음엔 다리 뒤쪽으로 온다. 다음은 목뒤다. 근육이 뼈에서 분리되는 듯 했다. 짠물에 누워 있는 양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심한 공포를 느꼈다. 눈을 감았다. 영상이 영화처럼 스쳤다.... 숨이 멎고 피가 멈췄다. 잠들었다가 깨어나자 다시 공포가 시작됐다. 이튿날 아침에 토했고 정오까지 아팠다.

 

첫 마약경험은 심한 공포와 구토였다. 그런데도 빌은 한 달 동안 8개의 주사기를 사용했다. 빌은 자신이 팔았던 약을 되샀고 그게 다 떨어지자 병원으로 갔다. 신장결석을 핑계대고 의사에게 마약 처방전을 받은 것이다. 의사가 잘 속지 않았지만 웃돈을 더 받고 처방전을 써주기도 했다. 빌은 처방전을 받아 매일 주사를 맞게 됐고 하루에도 예닐곱번씩 했다. 경관이 빌을 체포했는데 아내가 보석금 1000 달러를 내고 빼내 주었다. 감금돼 있는 동안 빌은 금단 증상을 겪었다. 눈앞에서 지네와 전갈이 들락날락 거렸다.

출소 후 모르핀을 구할 수 없자 헤로인을 시작했다. 취객털이도 했다. 동료가 술 취한 사람의 주머니를 뒤지는 동안 신문을 펼쳐 가려주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허탕을 칠 때도 많았고 경찰의 추격을 받았다. 결국 취객털이 대신 마약 밀매를 시작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마약이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빌은 거래를 하며 많은 중독자를 만났다. 돈이 없어 외상만 달라는 한심한 고객 천지였다. 경찰의 끄나풀이 돼 밀고하는 자도 있었다. 수사관이 점점 다가왔다. 이미 4개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터라 붙잡히면 징역 행이었다.

치료와 금단현상

빌은 렉싱턴의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선 8일 동안 하루 세 번씩 합성 모르핀 캡슐을 주었다. 그 후 바비투르산염 3일치를 주고 집단 거주지로 옮겼다. 빌은 약을 다 받자마자 퇴원했다. 이후 4개월간 약을 끊고 지냈다.

하지만 뉴올리언스에서 마약을 다시 했다. 5개월 만이었다. 마약 밀매업도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경찰이 거리에서 팔에 주사자국이 있는지 검사를 했다. 빌과 동료는 대마초를 소지하고 있다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차도 훔쳤다는 혐의를 받아 빌은 연방경찰에 연행됐다. 조사받는 동안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금단증상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구토와 설사가 가장 흔하다. 천식처럼 깊고 밭은 기침을 하는 사람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다가 갑작스럽게 격렬한 재채기를 하며 기도에 경련이 생겨 호흡 곤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난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 혈압이 낮아지고 극도로 허약해졌다. 생명력이 완전히 끊겨서 온몸의 세포가 전부 말라죽는 느낌이었다.

 

감옥에 있지 않는 한 금단증상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금단증상을 이기지 못하면 약을 끊을 수 없다. 혼자서 약을 끊기가 불가능한 이유가 이 금단증상이 5∼8일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아내가 보낸 변호사가 빌을 감옥에서 꺼내어 요양원으로 보내줬다. 거기서 모르핀 대용약제를 줬는데 효과가 없었다. 금단현상은 사흘째에 가장 심해서 온 피부에 동상을 입은 것 같고, 빽빽한 벌집이 된 듯했다. 피부 아래로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게 됐을 때 항(抗)히스타민 주사를 놔주어 도움을 받았다. 8일 후부터 주사를 찾지 않게 되자 빌은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3개월 후 재판 소환장이 오자 빌은 멕시코로 도피했다.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빌은 약을 찾기 시작했다. 3개월간 약을 끊었던 빌은 사흘 만에 다시 약물에 빠졌다. 빌은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매일 주사를 서너 대씩 맞는 습관으로 돌아갔다.

중독에 빠진 1년 동안 빌은 다섯 번 치료를 시도했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했다. 약을 서서히 줄여가면서 대신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8시간동안 데킬라를 계속 마시고 정신을 잃기도 했다. 술 때문에 빌은 미쳐 보였다. 오줌을 지리고 침대에서 악취를 풍기자 의사가 찾아와 술을 더 마시면 죽는다고 선언했다. 빌은 의사의 말을 따랐다.

야헤를 찾아서

이렇게 빌은 마약에서 빠져 나왔다. 그때 미국에서 옛 동료 마약상이 빌을 찾아왔다. 빌이 아는 여러 중독자의 안부를 물으니 죄다 나쁜 소식을 들려줬다. 목을 매어 자살하거나 감옥에 가 있다는 것이다.

 

빌은 아마존 상류의 인디언이 쓰는 ‘야헤’란 약에 대해 알게 됐다. 콜롬비아 과학자가 야헤에서 ‘텔레파신’이란 성분을 추출했다. 빌은 그 야헤를 구하려고 떠난다.

 

어쩌면 난 내가 마약과 대마초와 코카인에서 찾고 있었던 것을 야헤에서 찾을지도 모르겠다. 야헤가 마지막 약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무엇을 경고하는가?

책 속엔 많은 마약중독자가 나온다. 그들은 중독자가 될 줄은 모르고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정키’가 됐다. 자세히 살펴보면 특정인만 마약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선원이나 부랑자, 장애인이 있지만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의사나 변호사도 있었다. 마약 단속경찰조차 중독됐다니 그 다양함과 보편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누구라도 마약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일단 중독이 되면 그 상태는 매우 처참하다. 빌은 감방 가득한 중독자의 비참한 모습을 실감했다. 불평도 소용없고 아무도 도와줄 길이 없다. 빌은 당당하게 마약을 사용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내심으론 마약이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가장 무서운 약물임을 경고하고 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빌의 마약 중독과 치료과정을 통해 마약이란 흡혈귀 같은 존재로 악마처럼 상대를 노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집요하게 들러붙은 마약의 생리를 보며 우리는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빌은 여러 차례 치료를 시도하다 마침내 성공했다. 실제로 작가 버로스가 마약을 끊게 된 계기가 중독 중에 실수로 아내를 총기로 죽였기 때문이라니 그의 경고가 더욱 아프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