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5. Summer, 2017

 

  마약약물 정보 _ Drug story

마약, 그 헤어날 수 없는 수렁

김애양
수필가ᆞ서울 은혜산부인과 원장
 

친척 한 분이 병원으로 나를 찾아와 모르핀을 처방해달라고 부탁한다. 폐암 말기인 남편이 숨쉬기 괴로워하며 한숨도 잠을 못 이루는 모습이 딱해서 견딜 수 없단다. 일반인은 의사라고 하면 아무나 모르핀을 처방하는 줄 알지만 현실적으로 개인 병원에선 모르핀을 절대 취급할 수 없다. 오직 대학 병원에서만 엄정한 관리 하에 마약이 쓰인다. 이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는 마약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소설 중엔 의사가 마약의 일종인 모르핀에 중독돼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의사는 스스로 마약을 처방하고, 허벅지에 주사하고 때론 병원에서 훔치기까지 한다. 같은 의사로서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시대 배경이 100년 전이므로 러시아도 지금쯤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주사를 맞으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진다. 폴랴코프는 최근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또다시 무서운 복통이 찾아올까봐 두려워 약병에 남은 모르핀을 스스로 대퇴부에 0.01g 주사한다.

- 미하일 블가코프 작 ‘모르핀’ 중에서 -

소설의 소재가 된 모르핀 중독 경험

러시아 작가라면 톨스토이ᆞ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에겐 조금 생소하지만 그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우뚝 선 작가가 있다. 미하일 불가코프다. 그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불가코프는 1891년 키예프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그가 성병 전문의로 일한 기간은 잠시 뿐이고 1917년 러시아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백위군으로 입대했다. 종전 후엔 의사란 본업을 버리고 작가의 길을 택한다. 그럼에도 진료실에서의 여러 경험이 그의 작품 속에 담겨 후세의 독자에게 유익한 의학정보를 전해준다. 특히 중편소설 ‘모르핀’에선 마약 중독의 피해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보여준다. 작가 자신이 모르핀에 중독된 적이 있어 그 때의 경험이 소설의 토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긴 불가코프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운한 삶을 살았다. 스탈린 시대에 활동했던 그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검열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당시 전체주의 사회의 모순점을 신랄하게 풍자했기 때문에 검열 대상 1순위 작가였다. 도무지 자유로운 창작이 불가능했다. 한 번은 스탈린에게 탄원서를 내어 망명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설 ‘젊은 의사의 수기’와 ‘거장과 마르가리타’ 뿐 아니라 희곡 ‘개의 심장’ᆞ‘조야의 아파트’ 등 문학사상 굵직한 작품을 다수 남겼지만 48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생전엔 단 한권의 책도 발간된 적이 없다. 그의 연보를 살펴보면 불가코프가 얼마나 불운한 작가였는지 알 수 있어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복통 때문에 시작된 모르핀 투약

‘모르핀’은 어떤 작품인지 함께 따라가 보자.

젊은 의사 폴랴코프는 스물다섯 살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결혼을 했지만 오페라 여가수인 아내가 1년 만에 떠나가 버리자 그 때문에 폴랴코프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폴랴코프는 복통을 느끼게 된다. 원인도 알 수 없는 그 복통으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은 흙빛이 돼 간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본 간호사 안나가 모르핀을 놔 준다. 주사를 맞으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진다. 폴랴코프는 최근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또다시 무서운 복통이 찾아올까봐 두려워 약병에 남은 모르핀을 스스로 대퇴부에 0.01g 주사한다.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하루에 두 차례씩 규칙적으로 모르핀을 투여하게 됐다. 그는 모르핀을 맞은 효과를 이렇게 표현한다.

목에 촉감이 느껴지는 첫 번째 순간. 이 촉감은 따뜻해지고 온몸으로 퍼진다. 갑자기 명치끝에 서늘한 파도가 지나가는 두 번째 순간이 찾아온다. 그 다음에 생각이 아주 분명해지고 작업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모든 불쾌한 감각이 완전히 중지된다. 이때가 인간의 영적 능력이 발현되는 가장 높은 지점이다. 만약 내가 의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다면 인간이란 모르핀 주사를 맞고 난 후에야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는 일기에다 모르핀을 찬양하는 내용을 이렇게 적는다.

양귀비에서 최초로 모르핀을 추출한 사람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인류의 진정한 은인이다. 주사를 맞고 7분이 지나면 통증이 멈춘다. 고통이 파도처럼 쉴 새 없이 찾아오면 나는 달군 쇠 지렛대를 배 안에 꽂고 돌리는 것 같은 통증으로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나 주사를 맞고 4분 뒤, 난 그 통증의 파고(波高)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간호사 안나는 사실 폴랴코프의 실제적인 아내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폴랴코프가 모르핀을 끊도록 갖은 애를 써보지만 금단(禁斷)증상에 시달리는 것 또한 보고만 있을 수 없다. 그녀는 그래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번번이 모르핀을 구해다 준다.

폴랴코프는 자신의 중독을 알고 있는 주위의 간호사나 병원 직원의 싸늘하고 경멸적인 시선을 느낀다. 이런 시선을 견뎌야 했고 또 스스로 자기 비하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혼자 반문한다.

“내가 왜 남의 눈을 피하고 두려워해야 하는가? 실제로 내 이마에 모르핀 중독자라고 쓰여 있기라도 하는 건가?”

그는 모르핀을 구하지 못하는 날엔 모르핀 대신 코카인을 사용해 본다.

‘코카인은 추잡하고 간교한 독약’

거즈 위에 유리병과 주사기가 놓여 있다. 난 그것을 집어 상처투성이의 넓적다리를 요오드 용액으로 문지른 다음 주삿바늘을 살갗에 찔러 넣었다. 어떤 고통도 없었다. 오, 완전히 그 반대다. 난 금방 시작된 다행증(多幸症, Euphoria)을 미리 느낀다. 이제 그것이 시작된다.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경비원이 봄을 반기며 현관 계단에서 연주하는 찢어질 듯 목이 잠긴 아코디언 소리가 창문 유리창을 통해 내게 와서는 천사의 음성이 되기 때문이다. 팽팽해진 바람통 속에서 울리는 투박한 저음이 천상의 코러스처럼 낮고 둔탁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것은 순간이다. 어떤 약리학에서도 언급한 바 없는 신비로운 법칙에 따라 혈액 속의 코카인이 다른 새로운 것으로 바뀐다. 이것이 악마와 내 피가 혼합된 것이란 사실을 난 알고 있다.

이처럼 경비원의 서툰 아코디언 연주를 천사의 음성으로 느낄 만큼 코카인은 폴랴코프에게 황홀경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효과가 오직 1∼2분만 지속되는 점에 폴랴코프는 매우 분개한다. 그는 코카인이란 ‘가장 추잡하고 간교한 독약’이라면서 모르핀 중독자가 대체용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코카인 사용 후 그는 거의 반송장의 상태가 되곤 했으므로 악마가 작용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폴랴코프는 하루에 두 차례씩 오후 5시와 잠자기 직전인 자정에 3% 모르핀 용액을 규칙적으로 맞는다. 그리고 그 주사 덕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은 모르핀 덕택으로 훌륭하게 수술을 마치고 완벽하게 처방전을 작성하며 의사로서의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는 자신의 중독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폴랴코프가 금단증상으로 겪는 고통도 만만치 않다. 교과서에 적힌 모르핀의 금단 증상은 극심한 불안,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 흥분, 기억력 감퇴, 간헐적인 환각, 의식 불명 등이다. 폴랴코프는 환각 상태까지는 경험하지 않았지만 우울한 상태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것은 단지 우울함이 아니라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이다. 단지 한 두 시간만 모르핀을 끊어도 공기가 희박해져 숨쉬기가 불가능하다. 몸 안에 모르핀을 굶주리지 않은 세포라곤 없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다. 생명이 끊어진다. 시체가 움직이고 우울해하고 고통에 신음한다. 모르핀 외에 아무 것도 원치 않고 아무 것도 상상하지 않는다. 오직 모르핀!

굶어 죽는 것은 모르핀 결핍과 비교하면 안락하고 행복한 죽음이다. 모르핀 금단 증상은 아마도 생매장당한 사람이 무덤 속에서 마지막 남은 공기 한 줌을 들이마시며 손톱으로 가슴을 잡아 찢는 것과 같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단자가 장작더미에서 신음하고, 불꽃이 시뻘건 불꽃으로 처음 그의 발을 핥았을 때 몸을 떠는 것과 같다. 초췌한 죽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폴랴코프는 모르핀 중독에 대한 치료를 받기 위해 모스크바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는 연민보다는 모멸감을 심하게 주면서 그의 치료를 거부했다. 폴랴코프에게 더는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 정신과 의사는 폴랴코프가 곧 정신분열 상태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폴랴코프는 2주 만에 정신과 병원을 퇴원하면서 모르핀을 훔친다. 자격증을 가진 의사로서 도둑질까지 하다니. 타락한 인간에다 도덕적 인격조차 붕괴됐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동시에 1918년 러시아 대혁명의 총성을 듣고 앞으론 약국에서 모르핀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는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지만 폴랴코프의 생각은 다르다. 모르핀 중독자에겐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만의 행복이 있다. 그것은 완벽한 고독 속에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고독. 모르핀 중독자가 느끼는 고독은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사상이며, 삶을 위한 관조ᆞ평안ᆞ지혜라고 여긴다.

퇴원 후 그는 스스로 모르핀 용량을 줄이려고 애를 쓴다. 그러자 차츰 환각이 보이기 시작하고 구토를 한다. 65.5kg이던 폴랴코프의 몸무게는 51.5kg까지 빠진다. 그의 겉모습은 야위고 밀랍처럼 창백해진다. 그를 아끼는 간호사 안나는 맨 처음 모르핀을 투여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데 대해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폴랴코프에게 제발 병가를 내고 치료를 제대로 받으라고 애원한다. 폴랴코프는 그녀의 극진한 마음을 잘 알지만 잠시도 모르핀을 떠날 수가 없다.

이제 폴랴코프는 점점 더 구토와 발작에 시달리고 더 심한 환각 상태에 빠져 들어간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이웃 마을에 사는 동창생 의사에게 왕진을 와 달라고 편지로 요청한다. 그 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폴랴코프는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스물 다섯된 의사의 자살

일기체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모르핀 중독으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의사의 고통의 시간을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체험담이다. 그는 젊은 날 디프테리아에 걸려 기관지 절제술을 받았다. 그때 경험한 모르핀에 이내 중독이 됐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 소개된 지독한 금단증상을 극복하고 불가코프가 모르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작품 속의 의사 폴랴코프는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모르핀 중독이 괴롭다고 소설을 썼으면서도 작가인 불가코프 자신은 꿋꿋하게 중독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했다.

작가가 설명하듯이 모르핀이란 대번에 통증을 없애주고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황홀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중독되기가 매우 쉽다. 문제는 거기서 해방되는 일이다. 주인공 의사가 처음에 모르핀에 중독된 이유는 결혼생활 실패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복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신경성 통증이 모르핀 한 대로 거뜬히 해결되자 점차 모르핀에 탐닉하게 됐고, 사소한 반복이 마침내 헤어날 수 없는 중독의 수렁으로 이끈 것이다. 폴랴코프가 나름대로 모르핀을 끊어보려고 애를 쓰지 않은 바는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의학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마약에 중독된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주변의 마약관리 직원이나, 병원 접수 직원 또 간호사나 의사보와 같은 동료가 자신의 마약 중독을 눈치 챈 것도 알고 있다. 누군가는 뒤에서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다. 중독에 벗어나고자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지만 폴랴코프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는 이해하고 동정하기 보다는 원칙을 앞세워 의사 일을 그만두라고 충고한다. 어쩌면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인 셈이다. 병원을 퇴직하면서 폴랴코프는 모르핀을 훔쳐 나오기에 이른다. 모르핀 약병이 약장에 삐죽이 나와 있지 않았다면 아마 유리를 부수고 꺼내왔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는 대목을 보면 그의 중독은 깊고도 심각하다. 불과 1년 만에 생긴 중독인데도 치료방법이라곤 없어 보인다.

폴랴코프는 병가를 내고 큰 병원에 가서 치료 받아보려는 계획을 간호사이자 연인인 안나와 함께 세우기도 했지만 실천하지 못한다. 모르핀 없이는 단 며칠도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동료 의사에게 와서 도와달라는 애원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의사가 왕진을 떠나기도 전에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 방법밖엔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일 만큼 그의 절망은 깊고도 깊다.

프로포폴 마취 해달라고 조르는 환자 많아

오늘날엔 국가적 차원에서 마약을 단속하기 때문에 필자도 모르핀 중독 환자를 진료실에서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여러 약물에 중독된 환자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TV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은 색깔이 하얗기 때문에 우유주사라고 부른다. 산부인과에서도 간단한 마취를 위해 자주 사용하는 약물이다.

더러 뚜렷한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프로포폴 마취를 해달라고 조르는 환자를 만나게 된다. 피임기구인 루프를 삽입할 때도, 제거할 때도 마취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가 있다. 도무지 마취가 필요치 않을 만큼 간단한 시술인데도 갈급하게 프로포폴을 원한다. 처음엔 통증을 워낙 못 참아 그러려니 하고 이해했지만 나중에야 약물에 중독돼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용을 무척 조심하고 있다.

의료인 가운데 마약 중독자가 많다는 통계도 있다. 폴랴코프처럼 근무처인 병원에서 쉽게 마약을 처방하거나 투약하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의료인의 권한이 악용된 셈이라 더욱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 ‘모르핀’에서 보듯이 일시적인 고통을 해결하고자 투여 받은 약물이 한 인간에게 영원한 고통을 안긴다. 스물다섯 살의 창창한 나이에다 전문직을 가진 한 의사가 모르핀에 중독되자 권총자살을 택할 수밖엔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모르핀 중독이 무섭다.

양귀비의 흰 즙에서 추출해 ‘기쁨을 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는 약물이 정반대로 파멸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남다른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작가 불가코프가 알려주듯 우리의 삶엔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함정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