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5. Summer, 2017

 

  마약퇴치를 말하다 _ 마약퇴치人

마약 퇴치 활동 공로로 국민훈장동백장 받은 구본호 감사
구본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
 

지난 6월 26일 ‘세계 마약퇴치의 날’ 기념식에선 그동안 불법 마약 퇴치 운동에 힘써 온 이들에 대한 훈장ㆍ포장을 비롯한 각종 표창이 수여됐다. 이 자리에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장(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을 역임하고 20여년간 마약 퇴치 교육ㆍ홍보 활동에 앞장서 온 공로로 구본호 감사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새로이 이전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신관에서 7월 18일 구 감사를 만났다.

글쓴이 _ 이문예 '푸드앤메드' 기자

구본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

-영남대학교 약학과 학사

-前 국무총리실 보건의료자문위원

-前 대통령직속 약사제도개선 및 보건산업발전
      특별위원회 전문위원

-前 대구시약사회 대구지부장

-前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장

-저서 「구본호의 약사정책이야기」

1년도 안 돼 대구 지부장직 사퇴한 이유

구본호 감사는 2004년 대구시약사회 회장과 동시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 대구지부장으로 일했다. 주변에선 그의 국민훈장 수상 소식을 대부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마퇴본부의 성장에 쏟은 공로가 크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를 받는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원래 마퇴본부 일엔 큰 애정이 없었습니다. 2004년 대구시약사회장을 역임하며 자연스럽게 마퇴본부 대구지부장을 맡았지만 대구지부 안엔 저보다 훨씬 더 열의를 가지고 일하는 임원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취임 몇 개월 만에 마퇴본부 대구지부장직을 그만 둔 이유입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설립 초기 대한약사회가 주축이 됐다. 구 감사가 사퇴한 당시는 마약류 중독의 예방ㆍ치료 활동은 전문성을 갖춘 약사가 주축이 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지역약사회장이 마퇴본부의 지부장을 으레 겸하던 시기였다.

구 감사도 이런 관행에 따라 마퇴본부 지부장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직접 지부장 일을 해보며 생각을 달리했다. 약사회장이 자연스레 마퇴본부 지부장이 되는 구조가 오랜 기간 이 일에 애정을 갖고 임해 온 다른 임원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다. 마퇴본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선 평소 자신보다 더 열심히 일 해 온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이후 대구에선 약사회장이 마퇴본부 대구 지부장으로 오는 관행이 사라졌다. 이런 구 감사의 결단은 대구마퇴본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 누구든 열심히만 하면 지부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대구지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UN에서 ‘미션’ 공연 펼치는 게 꿈

2011년 대구에선 특별한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대구지부가 마약류 중독자 치료재활 교육프로그램의 하나로 기획한 뮤지컬 ‘미션(Mission)’이다. 실제 마약 중독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은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공연은 올해로 벌써 7년째다. 구 감사는 ‘미션’의 제작 초기부터 대구지부와 긴밀히 접촉하며 교감해 왔다. “학생 대상 중독 예방 교육을 나가보면 20년 전 아이와 수준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정말 똑똑합니다. 인터넷에서 웬만한 자료는 다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죠. 정보 제공 외에도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뮤지컬을 기획했습니다.”

뮤지컬 ‘미션’은 핵심 주연급을 제외하곤 다수가 대구지부의 마약류 중독재활센터인 ‘단약(斷藥)을 위한 라파교정교실’을 통해 중독 치료에 성공한 사람으로 구성됐다. 라파교정교실은 마약류 범죄로 기소 유예를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다. 힘든 과정을 겪은 중독 재활인이 직접 출연한다는 사실은 관람객인 학생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최근엔 전국적으로 이 뮤지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서울에서도 공연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공연 횟수를 늘려달라는 요청을 해오기도 했다. 올해엔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 처음 초청 받았다. DIMF에서의 공연은 구 감사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UN본부에서 ‘미션’ 공연을 하는 게 꿈이 됐습니다.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우리 공연을 초청했다는 것은 극의 구성이나 배우의 연기가 일정 수준은 넘었다는 이야기잖아요. UN도 못 갈 이유가 없죠.”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마약퇴치운동에도 약사정신 필요

‘미션’의 성공은 대한약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약사회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출범 초기부터 회비의 일부를 후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마퇴본부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지만 종종 약사회 내부에선 ‘왜 우리가 매년 회비를 걷어서 마퇴본부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구 감사는 그럴 때마다 “마약퇴치운동은 애국운동이자 약사의 의무”라고 설명한다.

“서구열강이 원주민을 장악할 때 이용한 것이 술과 마약입니다. 알코올과 마약중독을 막아내지 못하면 나라가 쓰러지죠. 그러니 마약퇴치운동은 나라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도록 하는 애국운동인 겁니다. 얼마나 보람된 일입니까?”

구 감사는 약사가 일종의 약사정신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로부터 국민의 안전한 약 복용을 돕도록 약사면허를 받았으니 모든 종류의 약을 약사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엔 마약류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군인에겐 군인정신이, 기자에겐 기자정신이란 게 있습니다. 군인과 기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싸우고 보도하죠. 약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것이 약사정신 아니겠어요? 약사에게 마약 퇴치운동은 숙명입니다.”

그는 이런 소신을 바탕으로 대구마퇴본부의 후원금 모금을 위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대구마퇴본부가 대구시약사회의 후원금 연 1400만∼1500여만원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나갈 때 시의 후원을 받아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 일이 마중물이 돼 현재 대구마퇴본부의 연간 예산은 3억원을 훌쩍 넘겼다

감독 역할 해 대리수상 했을 뿐

인터뷰를 마치면서 구 감사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받은 훈장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지부를 이끈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대리 수상이란 것이다. 그는 전국에서 수십 년간 후원금을 내고 마약류중독 예방교육에 힘써 온 3만 약사, 철학을 갖고 마퇴본부와 지부를 이끈 많은 임ㆍ직원에게 돌아갈 상을 자신이 대신 받은 것이라 말한다.

“운동 경기에 비유하자면 제가 그동안 한 일은 선수가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게 잘 돕는 일이었습니다. 전 직접 경기장에서 뛰지 않았죠. 직접 뛴 수많은 선수를 대신해 상을 받은 셈입니다.”

국민훈장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구 감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겸손하고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