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SPRING VoL.84

  마약퇴치를 말하다 _ 마약퇴치人

"마약 중독자를 양지로 끌어내는 정책 필요"
이철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강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철희 감사는 약사 출신으로, 1995년 마퇴본부 부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하며 처음 마퇴본부와 인연을 맺었다. 벌써 23년째다. 현재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정책ᆞ예산ᆞ후원활동 등 전반 적인 활동을 점검하고 지도·개선하는 감사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창립 25주년 기념식이 열린 4월 21일 서울 당산의 한 컨벤션 센터에서 이 감사를 만났다.

글쓴이 _ 이문예 '푸드앤메드' 기자

이철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

-부산대학교 약학과 학사/ 석사

-경성대학교 약학대학 박사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사회복지 전공) 석사

-동의대학교 행정학과 박사

-前 대한약사회 부회장, 감사

-現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고문

-現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

재발은 중독치료의 한 과정

“미국 국민의 61%가 마리화나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했다죠. 그러나 우리 국민의 마약류에 대한 시선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마약류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 감사는 인터뷰 당일 아침 언론에 보도된 미국의 설문조사 내용을 언급하며 마약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무관용적ᆞ폐쇄적 정서를 지적했다. 이 조사는 미국 의 CBS 방송이 미국 전역의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미 미주ᆞ유럽에선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 또 는 양성화하고 있다. 그에 반해 국내 분위기는 다르다. 대마초는 말기암 환자에게 강한 진통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의료용으로의 사용에도 부 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내에선 의료용을 포함해 마약류와 관련된 모든 행위가 전부 위법사항이다. 마약류를 사고 판 사람뿐만 아니라 단순히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 벌 대상이 된다.

“알코올 중독이나 게임중독 등을 범죄라고 생각하진 않잖습니까? 경륜, 경정, 로또 등 정부차원에서 국민의 사행심을 부추기고 있고 개인적으로 도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알코올중독이나 게임중독 등은 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면 다시 가정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마약류 중독 은 알코올이나 게임중독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한 번 단속되면 중독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 법적 처벌을 받게 되고 마약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마약류중독 자들이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중독이라고 하는 질병 못지않게 마약전과자라고 하는 사회적 낙인 때문입니다.”

그는 마약류중독자들에게 치료·재활의 기회를 박탈하고 단순 구금·격리시키는 엄정한 사법정책은 마약류에 대해 오히려 잘못된 인식을 뿌리내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마약 류 중독자를 무조건 전과자로 낙인찍는 사법정책 때문에 마약류 중독자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법을 위반한 범법자로서 처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약류중독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에 마약류 중독자는 한 번의 실수로도 가정과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는 고통을 겪고 있 다. 다시 마약류를 투약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기 힘든 이유다.

마약류 투약자를 양지로 이끄는 정책 필요

이 감사는 197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마약류 중독자도 알코올중독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독환자”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중독자치료보호규정에 근거하여 전국 광역시·도에 마약류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실상은 유명무실한 상태로 명맥만 유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약류투약자를 무조건 교도소로 보내 구금·격리시키는 것은 이들에게 중독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마약류투약자를 무조건 교도 소로 보내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 보다는 치료보호기관에 보내 중독치료 받을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마약류 관리 정책을 소개했다.

“네덜란드는 마약류를 국가가 관리하면서 가격파괴정책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경로보다 더 싼 가격에 공급하거나 심지어 순도 100%의 마약류를 무료로 제공하면 서 점차 이들을 치료과정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마약류중독자를 철저하게 국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선 자신이 마약 투약자임을 신고하면 지정된 의사가 적절한 마약을 처방하고 국가 지정 병원에서 투약할 수 있도록 한다. 마약 중독자를 양지로 끌어내 치료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중독자 입장에선 높은 가격에 사들여야 하는 마약을 무료 또는 거의 원가에 공급 받으니 좋고, 본인이 원하면 치료기관의 혜택을 받을 수도 있 다. 정부도 마약 확산을 막을 수 있으니 더불어 좋은 정책인 셈이다.

그렇다고 네덜란드와 같은 정책을 지금 당장 시행하자는 건 아니다. 국가마다 마약류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가 다르고, 문화와 관습, 전통이 모두 차이가 크기 때문에 마약류 정책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사는 “우리도 국가 차원에서 마약류 투약자가 양지로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 하게 주장했다. 투약자가 자수를 할 경우 교도소에 구금·격리시키기 보다는 무조건 치료·재활의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을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마 약 투약자임을 고백하는 사람들까지도 교도소에 수용해 전과 횟수를 늘려가는 현재와 같은 사법정책으론 결코 마약류투약자를 감소시킬 수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나라 의 마약류단속 통계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됐다.

“남녀노소 누구나 손댈 수 있는 것이 마약”

이 감사는 마약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국민의 마약에 대한 인식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약 퇴치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마약에 손을 대지 않 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마약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강하다. 이 감사는 그런 인식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마약에 손을 대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들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손을 떼지 못하고 중독자가 되는 겁니다.”

그는 마약 확산을 막기 위해선 의약품 오ᆞ남용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분위기를 국민 스스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의약품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태도를 가지 면 자연스럽게 마약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의약품은 편의용품처럼 필요한 때 편리하게 사서 쓸 수 있는 물품이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막기 위해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는 “코앞의 횡 단보도를 두고도 육교나 지하도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의료 목적의 약물이라도 반드시 필요한 때 적정 시기 동안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딴 마약전문가

이 감사는 운동본부 안에서도 굉장한 ‘노력파’로 손꼽힌다.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보유한 약사다. 2006년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학위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9년엔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마약 정책과 관련된 박사 논문으로 마약정책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운동본부의 활동은 크게 마약 중독 예방과 홍보, 치료, 재활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감사는 이 중 마약 중독 예방과 홍보가 기존의 약사 업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업 무 연속성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치료ᆞ재활은 상담전문가나 사회복지사 등과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라 판단했다. 마약퇴치운동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전개해 나가기 위해선 예방ᆞ홍보ᆞ치료ᆞ 재활의 전반적인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도 모두 제대로 된 마약퇴치운 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부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간의 노력을 흘리듯이 얘기 했지만 막힘없이 술술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평소 마약퇴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이어나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