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 - 백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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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국민가수로 잘 알려진 조용필의 애잔한 노랫소리가 아릿한 여운과 함께 가슴을 훑고 지나쳐갑니다. 마음 한 자락이 저려옵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순환하는 계절을 따라 꽃은 피고지고, 자꾸만 되풀이되는 세월 속에 어느 덧 내 나이 마흔하고도 셋…….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건만 지금 내 곁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없다는 사실에 아득한 절망감과 한없는 서글픔을 동시에 느낍니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리오. 좀 더 충실치 못했던 지난 삶이었기에 자꾸만 미련이 남고 그 미련은 자괴감을 동반시킵니다. 시나브로 염세주의자를 닮아가는 나 자신을 느끼고 때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한 순간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뿐, 살고 싶다는 의욕은 좀체 생겨나질 않습니다.

   누가 나를 삶의 끝자락으로 내모는 건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죽음을 연상케 하는 건지…?
   마… 약… 
   필… 로… 폰…

   그렇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내 숨통을 조여오던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마약이었고, 날이면 날마다 나로 하여금 생명이라는 것을 휴지처럼 구겨서 아무데나 버리고픈 충동을 느끼게 한 범인 또한 바로 필로폰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살며시 다가왔다가 진한 블랙커피처럼 쓴맛을 남기고 훌쩍 떠나 버리는 게 첫사랑이라면 마약은 한번 가깝게 지내면 평생 내안에 기생하며 내가 철저히 망가지도록 온갖 욕심과 심술을 다 부립니다. 어느 날 우연히 손님인 척 내안에 불쑥 쳐들어 와선 마치 자기가 주인인양 눌러앉아 나를 세월을 좀먹는 기생충으로 만들어 놓고는 내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싸늘히 미소를 짓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꼭 한번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20년 전으로 돌아가 마약의 유혹을 철저히 뿌리치고 그 흔적 역시 말끔히 지우고 싶습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구들과 맞서 싸운 사명당의 스승인 서산대사는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60년 전에는 그대가 나이더니 60년 후에는 내가 그대이구려.> 하며 세월의 무상함에 커다란 한숨을 토했다고 합니다. 나 역시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팽개쳐진 지난 나의 20년이 가여워서 웁니다. 이제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나의 그 20년이 마냥 아쉬워서 또 한 번 웁니다.

1987년 10월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는지 아니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그날은 분명 내가 􄤨􄤨지방 법원으로부터‘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2년 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출소를 한 날이었습니다.

   당시 단짝 친구였던 백수광(지금은 죽고 없지만)이란 친구가 밤늦게 찾아와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가까운 여관으로 가자고 해서 나는 주저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친구는 여관 앞에 들어서자 곧바로 1회용 주사기 두 개를 꺼내 밀가루 같은 흰 분말을 담더니 그 중 한 개를 나한테 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게 바로 필로폰이었습니다. 당시 필로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그것이 뭐냐?”고 묻자, 그 친구는“그냥 몸에 좋은 것이니 한번 맞아봐라.”며 나의 팔에 주사기를 조심스레 꽂았습니다. 투약을 하고 난 후, 수광이 그 친구는 매우 기분 좋아했지만 나는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친구 녀석이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날 이후 수광이는 시도 때도 없이 어딘가에서 필로폰을 구해와 내게 억지로 주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필로폰에 길들여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서 나는 결국‘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 위반’으로 다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집행유예 있던 것까지 고스란히 함께 징역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광이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만기 출소 후,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순조롭게 새 출발을 하는 듯 했으나 4~5년이 지나면서 다시 필로폰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파멸의 씨앗이 되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가정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가장의 도리를 망각한 나는 흔히 말하는‘마약쟁이’가 되어 오직 쾌락만 추구하는 짐승 같은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걸핏하면 폭력과 마약으로 구속되어 아내의 가슴을 찢어놓기 일쑤였고, 아들과 딸은 밥 대신 눈물을 먹고 자라게 하는 몹쓸 남편, 못난 아빠로 낙인 찍혀야만 했습니다.

입소와 출소를 반복하길 수차례…

   어느새 나는 불혹을 훌쩍 넘긴 초라하고 볼품없는 중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곁엔 아무것도 그 누구도 없다는 슬픈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습니다. 현재 아내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고, 아이들은 아빠가 없어도 크게 보고파하는 기색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용서를 빌어야 하건만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아 그저 가슴앓이만 하는 내가 바보처럼 여겨집니다.

나 자신에게 구역질이 납니다.

   정말 징그럽습니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인지….
   이것이 진정 내가 가야할 길이며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지….
   깊어가는 이 밤만큼이나 마음의 시름 또한 한없이 쌓여만 갑니다.

   문득, “사람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나의 가치는 어느 정도나 될까?”하는 의문을 잠시 가지다가 그러면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서글퍼 질 것만 같아서 그냥 쓴 웃음만 한번 지어 봅니다. 아무리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치고 싶진 않습니다. 들판에 아무렇게나 돋아난 풀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데,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 작은 흔적도 남겨놓지 않고 사라진다는 건 원통하고 분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이제라도 눈물을 버리고 괴로움을 잊고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각오로 새 삶을 개척하는데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엉망으로 흙탕진 때 묻은 이 가슴을 깨끗이 세척하고 또 반듯하게 잘 다림질 하여 단 하루가 될지라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이 이런 노래를 흥얼거릴 것입니다.

   <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