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도 사랑의 빛은 언제나 우리 곁을 비추고 있다 - 박무영

  • 조회수 5664

어린 시절 정을 느껴보지 못한 외톨이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저 또한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계모할머니의 횡포에 짓눌려 기본적인 것조차 누려보지 못하며 자랐습니다. 아주 당연해야 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그 그림자조차 모른 채 어리고 여린 내 마음은 나날이 주눅 들고 억압되어만 갔습니다. 얼굴조차 보기 힘든 아버지, 아버지를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아버지는 저에게 무관심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아예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도시인 􄤨􄤨에서 9번 전학을 다녔으며, 보호받아야 할 어린 영혼의 마음은 억압되었고 안전하지 못한 생활로 나날이 병들어 갔습니다. 자주 전학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었으며, 마치 노숙자의 짐 보따리처럼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잠잘 수 있는 곳을 향해 수많은 친척집들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신다는 변명도 저에겐 이미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습니다. 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 저에겐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멋진 꿈이 있었습니다. 가난 속에서 눈치만 보면서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길 몹시 갈망하면서 가지게 된 꿈은 순식간의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인기가수, 바로 스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때문인지 저는 더욱더 세상의 성공을 갈망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바다에서 실종되어 사망처리 됐다는 소식을 어른들의 어깨너머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밖에 되지 않았던 그 꼬마아이는 눈물조차 잃었는지 아무런 슬픔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조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치 지구반대편 세상에서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누군가가 실종된 것처럼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그저 눈치 보며 사는 떠돌이 방랑자 생활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아버지의 사망보험금 중 절반은 이복동생에게 돌아갔고 나머지 반은 친척들의 의견에 따라 고모가 나를 키워준다는 명목 하에 받아서는 자신의 식구들과 함께 남미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힘겹고 외로운 외국생활이었다.

   아주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한인교회에 다니며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되기 위해 찬양부 활동을 하면서 좋아하는 악기를 다루는 법과 음악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성적인 성격으로 굳어졌던 나는 고모라는 타인의 가정생활에서의 구속된 느낌과 남들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으로 융화되지 못했고, 결국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더욱 난폭해져 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학업에 흥미를 잃고 아무 때나 폭력적 성향을 표출하여 결국 퇴학당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곳은 대인기피증이 있는 나에겐 마치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적막한 세상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외롭고 힘겨운 생활이었습니다. 음악도 종교생활도 내안의 뿌리 깊게 박힌 고통스런 상처를 결코 치유하지 못했고, 어른들의 억압적인 태도는 더욱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대마초에서 코카인까지.

   쓰라린 외로움에 내면의 빈자리를 채워줄 어떤 것을 갈구 하던 중 우연히 그곳에선 아주 흔한 마약인 대마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희열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쾌락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나자 각성작용은 둔화되어 더 많은 양의 대마초를 피우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코카인까지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어느덧 18살이 되었습니다.

꿈을 안고 귀국했지만.

   머리가 크니 더 이상 꽉 막힌, 관심 없는 환경과 구속이 싫어 홀로 허허벌판처럼 광활하고 삭막한 한국의 서울로 귀국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나이에 100만원을 가지고 입국하여 많은 주유소와 일자리를 돌아다니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가슴 한편엔 가수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 용기를 내고자 했지만 이미 몸과 정신은 마약에 중독되어 혼미해져 있던 터라 어리석게도 약물에 대한 쾌락적 자유를 잊지 못해 무의식적으로 계속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20살 때 오디션을 통해 마침내 모 음반 기획사에 캐스팅되었습니다. 가수준비를 할 수 있게 되어“아! 이제 나의 멋진 꿈이 실현되는 구나!”하고 몹시 기뻐하며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날도 잠시, 그 당시 가수 􄤨􄤨씨 등으로부터 그들이 은밀히 남용하고 있던 일명‘땅콩’이라는 하얀 향정신성의약품(마약)을 받아 사용하게 되어버렸습니다. ‘ 러미날’이라는 약보다 더 좋고 먹으면 음악적 자질이 극도로 높아진다는 몹쓸 유혹에 넘어가 버린 때문입니다.

   처음에 15개를 먹으니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 같기도 하여 정말 음악적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S정’이라는 약도 2~3개월 함께 복용하기도 했지만‘S정’은 좋지 않아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그리하여 평탄할 것만 같았던 음반 취입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여러 불화가 생겨났습니다. 처음에 15개로 시작한 복용량도 1년 후 에는 한번에 80알을 먹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늘어났습니다. 하루에 2~3회 투약했기 때문에 하루에 150알을 먹게 되었고 약효는 하루도 채 가지 않아 이틀 후에 또다시 투약하는 심각한 생활을 반복하며 가수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당시 나의 영혼과 생명은 이미 마약이라는 악마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듯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신분열증 치료받다.

   그 후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재의 제가 있게 해준 일생일대의 긍정적 사건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정말 살아서 경험할 수 없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생지옥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이상자가 되어 더 이상 마약을 할 수 있는 정신적 판단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고질적인 정신분열증을 겪으며 세상에서 미쳐 지내다 친척들의 대책에 의해 아니 사회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다 경찰에 의해 구속도 되고 기소유예로 금방 풀려났다가 또다시 경찰에 잡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후에 친척들의 도움으로 힘겨운 2년간의 입원치료를 받으며 마침내 온전한 정신과 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서 얼마나 고마운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곳에서 자연히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더불어 갈망하던‘사람들과의 진실한 교류속의 사랑’을 알게 되었으며 병들었던 나의 마음과 영혼은 급속도로 정화되고 치유되어 갔습니다. 주로 교양서적을 많이 보게 되었고 영적인 문헌과 경전들을 보고 배웠으며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어리석음과 아픔을 눈물로써 씻어 내렸고 화목한 가정과 조화로운 사회생활을 위해 이 세상은 다시 저에게 갱생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TV를 통해 가수 현􄤨􄤨씨가 마약을 이겨내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더 큰 용기와 희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아주 훌륭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저 또한 꼭 그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생각입니다. <사실 나는 교도소에서 죗값을 받고 있지만 마약과는 전혀 무관하게 술을 먹고 경미한 실수를 하여 곧 출소할 때까지 하나님의“삶을 재정비하라”라는 계시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약은 고통과 시련이다.

   나는 마약으로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잠깐의 쾌락은 이 고통의 세월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마약은 또한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마약’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무서운 채찍처럼 과거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반성하라는 하늘의 천둥소리 같아서 매우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진짜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약의 결단과 희망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다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홍수에 휩쓸려 죽음과도 맞닥뜨려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험난한 상황 속에서 과연 무엇을 가슴으로 느끼고 앞으로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의 어리석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깊이 뉘우치며 정말 새로운 삶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니 진실로 마약을 끊을 수 있는 결단력과 희망이 생겨납니다.

   사실 이미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진정으로 마약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뼛속 깊숙이 깨닫지 못한다면 어떠한 변화도 힘들 것입니다. 그토록 마약은 무섭습니다. 아마 마약의“마”자는 악마를 가리켜 악마의 약이라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그 악마도 우리가 우리자신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우리의 몸속에 그러한 악마의 약을 어떻게 주입시킬 수 있겠습니까?

사랑합시다.

   우리는 꼭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곧 이 세상의 모든 악마는 사라지고 이 세상은 분명히 아름다운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이 충만한 채 살아 갈 것입니다. 이제 진실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봅시다. 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그냥 우리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선택만 하면 됩니다. 사랑은 우리를 치유합니다. 어둠속에서 헤매는 우리의 영혼을 이제‘사랑의 빛’으로 치유합시다. 눈물로 과거를 회개하고 진정한 사랑에 눈 뜰 때 이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행복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약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