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나의 인생 모두를 빼앗아 갔다 - 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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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평범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남들보다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누리기를 원하고 있다. 나 역시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는 엘리트 엔지니어라는 칭찬을 받으며 젊은 시절 의욕적인 직장생활을 하였다. 석유화학건설현장에서 수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플랜트 건설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동안 성실하고 책임 있는 공사로 업계에서는 기술적 우월성을 인정하는 소문과 함께 공사의 수주량은 회사 규모로는 처리해 나갈 수 없을 만큼 발전해 나갔다. 이 무렵 나는 십여 년간 사귀어 오던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이듬해 첫아들을 얻었다. 회사의 운영은 순조로웠고 가정에서의 행복 또한 최상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주었던 IMF의 여파는 나에게도 어김없이 닥쳐왔고 회사의 부도로 2년여의 수형생활을 해야 하는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출소 이후 재기를 위한 나의 노력은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아내에게는 허황된 꿈으로만 비춰져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의 처지와 입장을 잘 알고 있던 친구는 나를 위로하겠다며 접대부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갔다. 아내와의 갈등으로 재기의 의욕을 잃고 좌절하며 방황하던 나는 이곳에서 만난 여인의 위로에 마음을 빼앗기며 필로폰의 유혹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순간 현실을 망각하고 잘못 판단한 자신을 후회하고 자학하면서도 타락과 향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아내와 결별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고 필로폰을 판매하고 함께 투약하던 여자와 함께 2001년 5월 검찰에 구속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석방된 이후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던 나는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는 아픔과 함께 정신적 지주로 생각했던 형님마저 폐암으로 잃게 된다. 이혼이라는 동병상련의 시련과 아픔을 경험한 착한 여인과의 새로운 삶을 위하여 나는 충북 단양에 귀농하여 1년이 넘도록 열심히 살고 있었다. 교도소에서의 인연으로 나를 찾아온 사람으로부터 중국에 함께 가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보자는 제의에 새로운 삶을 강조하며 거절하였으나 이 사람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악연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필로폰을 가져와서 소비해 줄 것을 요구하며 수회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을 나에게 무상으로 교부하고 돌아간 이후 나는 또다시 마약을 투약하게 되었으며 재혼한 아내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나는 집을 나오게 된다. 이후 나는 필로폰을 밀수입 판매하는 이들 조직에 의하여 아내까지도 이용되고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제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후 나는 7년의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아내는 자수를 권유한 나의 의중과는 다르게 기소중지 되어있는 상황에서 팔순의 고령이신 아버님의 중풍을 수발하고 부양하다가 지난 2월 구속되어 3년의 징역형을 받고 고등법원에 항소 중이다. 1년여의 수형 생활을 하면서 나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없도록 예방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한순간의 잘못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선택하게 되는 마약. 이를 접하는 순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당사자의 인생은 물론이며 가족모두의 상처이며 고통이 될 것이다고 확언하고자 한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악의 원흉인 마약의 근절과 예방을 위하여 용기 내어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망가진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뼈를 깎는 성찰과 반성의 계기가 되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함이며 마약의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임을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나의 고백이 마약을 퇴치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